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 사뇰 (문단 편집) === 국가대표 경력 === 사뇰은 2000년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처음 선발된다. 이후 2001 컨페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 멤버로 참가하나 사뇰의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 자리는 프랑스 철의 포백 중 한 명인 [[릴리앙 튀랑]]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경기에 뛸 수는 없었다. 이후 유로 2004를 끝으로 [[마르셀 드사이]]가 대표팀을 은퇴하면서 튀랑이 센터백으로 이동하면서 드디어 주전을 차지하는가 싶었지만[* 튀랑조차 중앙 수비를 보고 싶어했지만 드사이의 은퇴 전까지 움직이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사뇰의 국가대표 행적이 미비한 것은 튀랑을 비롯한 당시 프랑스 포백이 너무 견고했던 탓이 크다 하겠다.][* 비슷한 경우로 동시대 [[AS 로마]]에서 [[카푸]]와 더불어 최고의 측면 수비진을 형성했던 [[뱅상 캉델라]]가 있다. 이쪽도 월드 클래스 풀백으로 평가받던 선수로 프랑스의 월드컵과 유로 2000의 우승 멤버였으며, 심지어 양쪽 풀백을 모두 뛸 수 있었지만, 견고한 철의 포백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40경기 출장에 그쳤다.], 첼시에서 라이트백으로 맹활약하고 있던 [[윌리엄 갈라스]]에게 밀렸다.[* 당시 갈라스는 무리뉴의 첼시에서 가장 중요한 수비수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첼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A매치 58경기에 출장하였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갈라스가 센터백으로 이동하면서 라이트백의 주전 자리를 차지하여 전경기에 모두 출장해 팀을 결승까지 올려놓는 맹활약을 보여주여 프랑스 국가대표의 역사에 족적을 남겼다. 비록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우승에는 실패했으나 연장전 [[지네딘 지단]]의 회심의 헤딩 슈팅을 [[잔루이지 부폰]]이 막아낸 월드컵 역사에 남을 세이브 장면에서 지단에게 올린 정확한 크로스는 사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C0RNx9ZVxc|#]] 이후 유로 2008에도 출전하였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티에리 앙리]]의 만회골을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분전했다.[* 유로 2008 당시 프랑스의 득점은 '''겨우 1득점'''이였다. 그 1득점을 어시스트한 선수가 사뇰인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 꼴찌로 탈락하게 되었고 이후 사뇰은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